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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시의 방언과 고향 정서에 담긴 한국어 미학과 민족 정체성의 탐색

by 비비국어 2025. 5. 11.

 

백석 시의 방언과 고향의 정서

백석 시인은 한국 현대시사에서 언어의 아름다움과 고향 정서를 섬세하게 결합한 대표적인 시인이다. 그의 시에는 평안도 방언이 자주 등장하며, 이는 단순한 지역적 특색을 넘어서 언어의 뿌리와 정체성, 그리고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집요한 회귀를 상징한다. 백석은 표준어 중심의 문학 흐름 속에서도 방언을 문학적 자산으로 끌어올려 시어의 질감을 풍부하게 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언어를 통한 정서적 공감과 향수를 이끌어낸다. 본 글에서는 백석 시 속 방언의 미학적 가치와 고향에 대한 심상 표현이 지닌 문학적 의미를 다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방언으로 새긴 시의 풍경, 고향의 체취를 담다

백석(白石, 본명 백기행)은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시인으로, 해방 이전 조선어 시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도 한국적 정서를 시어에 담아내고자 하였으며, 그 핵심에는 ‘방언’과 ‘고향’이라는 두 축이 자리 잡고 있다. 그의 대표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여승」, 「함남도 안변」 등에는 당시 문단에서 드물게 사용된 평안도 방언이 정서의 핵심 요소로 녹아들어 있다. 이는 단지 지역색의 재현이 아니라, 그가 추구한 시적 언어의 질감과 한국어 고유의 정서를 표현하려는 문학적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방언은 백석에게 있어 고향을 기억하고 재현하는 하나의 창문이었다. 단지 지리적 공간으로서의 고향이 아닌, 삶의 감각과 정서가 응축된 총체로서의 고향 말이다. 이는 그가 방언을 사용할 때 느껴지는 리듬감과 어휘의 미묘한 뉘앙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풍속과 민속의 세계를 통해 더욱 분명해진다. ‘마악’, ‘구수하다’, ‘곰상곰상’ 같은 표현들은 표준어로는 담아낼 수 없는 감각의 층위를 만들어내며, 독자에게 살아 있는 고향의 향기를 전한다. 이처럼 백석의 방언 시는 단지 언어적 실험에 그치지 않고, 시적 상상력을 통해 한국인의 정서적 원형을 회복하고자 했던 진지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언어의 향토성, 그 문학적 전략

백석 시의 핵심적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방언의 활용을 통해 언어의 향토성과 정서를 극대화한다는 점이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방언은 단순한 민속적 장식이 아니라, 시적 주제와 분위기를 구성하는 중심 요소로 기능한다. 예컨대 「여승」에서는 “여기 살던 옛사람은 다 어디 갔는고”와 같은 구절을 통해 정감 있는 평안도 말투가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며, 시간의 흐름과 사람의 사라짐에 대한 비통함을 한층 절절하게 만든다. 이러한 언어의 선택은 백석이 지닌 고향에 대한 애착이자,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단절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언어로 복원하려는 의지로 해석된다. 그는 당시 주류 문학에서 강조되던 서구 모더니즘이나 일본식 번역체 시어를 지양하고, 오히려 조선의 말, 그것도 북방의 말을 통해 ‘우리 시’의 가능성을 실험하였다. 평안도 방언은 억양이 완곡하고 부드러운 특징을 가지며, 이는 백석 시 특유의 서정성과 잘 어우러진다. 예컨대 ‘눈이 오오’와 같은 표현은 표준어로는 단순한 서술에 그치지만, 방언 특유의 반복과 감탄형 어미는 정서의 깊이를 한층 더한다. 또한 백석의 방언 사용은 고향이라는 주제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고향은 그에게 추억과 상실, 정서와 정체성의 교차점이며, 방언은 그것을 전달하는 정직하고 본질적인 언어였다. 고향을 묘사하는 시에서는 계절의 변화, 마을의 구조, 인물들의 이름까지 방언을 통해 살아 움직이며, 독자는 마치 한 편의 민속 다큐멘터리를 읽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이는 백석 시가 단지 문학적 텍스트에 머무르지 않고, 한국인의 기억 속에 깊숙이 뿌리내릴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백석의 방언 시가 남긴 유산과 현대적 의미

백석의 방언 시는 단지 과거의 문학유산으로서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어의 본질, 언어의 감각, 고향의 정서가 삼위일체로 어우러진 귀중한 문학적 자산이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표준어는 점차 획일화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지역어, 특히 북방 방언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백석의 시는 점점 더 귀중한 미학적 가치와 문화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의 방언 시는 한국인의 감성에 내재한 언어의 뉘앙스를 되살리며, 지역적 정서를 보편적 공감으로 끌어올린 문학적 승화의 결과이다. 단지 고향을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언어로서 고향을 재건하고, 감각적으로 복원한 그의 시는 언어가 곧 세계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또한 디아스포라와 단절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백석의 시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개인의 정체성과 공동체의 기억을 연결하는 다리가 된다. 따라서 백석 시인의 방언 시는 단순한 민속적 회고가 아니라, 한국어의 미학과 고유성, 그리고 문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지금 우리가 그의 시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가 남긴 언어적 감각 속에서 우리가 잊고 지낸 감정과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백석의 방언은 단지 말의 형태가 아니라, 한국인의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울림이며, 그것은 여전히 유효한 문학적 언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