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 문학사에서 향가는 단순한 노래를 넘어 신라인의 정서, 사상, 종교적 세계관을 응축한 귀중한 문학 유산이다. 특히 신라 시대의 향가는 기록으로 남은 가장 오래된 한국어 가요로, 이후의 국문문학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향가(鄕歌)’란 문자 그대로는 '향토의 노래'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신라인들이 향찰(鄕札)이라는 표기체계를 사용해 불렀던 시가 형식의 노래를 가리킨다. 이러한 향가는 고유의 언어 표현과 정서로 당대의 삶과 정신세계를 반영했으며, 불교와 관련된 신앙적 목적, 공동체 의식, 애민 정신, 개인적인 정한(情恨) 등을 담고 있다.
향가는 그 문학적 가치뿐 아니라 언어학적, 종교학적, 역사학적 측면에서도 큰 의의를 지닌다. 특히 향찰이라는 고유의 표기법을 통해 우리 고유 언어의 구조와 고대 한국어의 음운, 어휘 등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현전하는 향가는 『삼국유사』와 『균여전』을 통해 총 25수가 전해지고 있으며, 그 중 대부분이 신라 후기에 집중되어 있다. 작품의 형태는 4구체, 8구체, 10구체 등으로 나뉘며, 특히 10구체 향가는 신라 향가의 대표적인 형식으로 여겨진다.
신라의 향가문학은 불교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전개되었고, 귀족층이나 승려층의 문화적 교양을 대변하였다. 또한 구비 전승의 요소와 문자 기록의 요소가 함께 어우러져 있어 한국 고대 문학의 구술성과 문자성의 복합적 특성을 보여준다. 본고에서는 신라 향가문학의 주요 특성과 의의를 ① 향가의 형식과 내용적 특성, ② 불교와 향가의 관계, ③ 대표 향가 작품의 분석과 의미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1. 향가의 형식과 내용적 특성
향가는 고대 한국어를 향찰이라는 표기 방식으로 기록한 노래다. 향찰은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고유어를 표기한 독특한 체계로, 향가의 언어적 해독에 어려움을 주지만 동시에 고대 한국어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기능한다. 현전 향가는 주로 4구체, 8구체, 10구체의 형식으로 나타나며, 10구체는 ‘서두(기), 본문(승), 결말(전)’의 구조를 갖는 삼단 구성으로 발전되었다.
내용적으로 향가는 개인적 감정의 토로에서부터 공동체적 소망, 불교적 기도문 등 다양한 주제를 포함한다. 개인적인 슬픔을 담은 「원왕생가」나 공동체의 안녕을 비는 「처용가」, 신의 계시와 같은 종교적 신비성을 드러낸 「제망매가」 등은 향가가 다양한 사회적, 종교적 기능을 담당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향가에서는 ‘한(恨)’의 정서가 자주 나타나며, 이는 후대 한국 문학 전반에 흐르는 정한(情恨)의 원형으로 볼 수 있다. 예컨대, 월명사의 「제망매가」에서는 죽은 누이를 그리워하는 감정이 절절히 드러나고, 이는 단순한 슬픔을 넘어 불교적 윤회 사상과 해탈의 바람이 겹쳐진 복합적 정서다.
2. 불교와 향가의 밀접한 관계
신라 향가의 가장 뚜렷한 특성 중 하나는 불교적 색채이다. 향가는 단순한 노래라기보다, 일종의 불교적 서원문이나 기도문으로 작용했던 경우가 많았다. 이는 신라 시대가 불교국가로서 체제를 정립하고, 민심을 안정시키는 데 불교가 큰 역할을 했던 역사적 배경과도 관련 있다.
향가의 작가 중에는 승려들이 다수를 차지하며, 그들의 작품은 불교적 교리와 수행정신을 노래하는 내용이 많다. 예컨대, 충담사의 「안민가」는 왕과 백성이 마음을 고르게 하여 나라를 안정시키기를 기원하는 노래이며, 불교의 자비와 평화 사상을 국가 통치 이념과 연결한 작품이다.
또한 향가는 의식적인 불교 행사에서도 자주 사용되었다. 「도천수대비가」는 관세음보살에게 복을 빌기 위한 노래이며, 이처럼 향가는 일종의 ‘찬불가’로서의 성격도 띤다. 이는 향가가 종교와 문화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며, 단순한 문학작품을 넘어 종교적 실천이자 공동체 의례의 구성요소였음을 보여준다.
3. 대표 향가 작품의 분석과 의미
향가 문학의 가치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개별 작품의 정밀한 분석이다. 그 중 가장 많이 회자되는 세 작품은 「제망매가」, 「처용가」, 「찬기파랑가」이다.
- 「제망매가」(祭亡妹歌): 월명사가 죽은 누이의 명복을 빌며 지은 향가로, 죽음을 초월하려는 불교적 관념과 인간적인 애절함이 결합된 대표작이다. “아아, 이를 어찌할꼬. 이내 죽은 동생아. 이승과 저승의 길은 서로 멀다 하니…”라는 구절은 누이를 보내는 애틋함과 함께, 그를 극락으로 인도하려는 기원이 서려 있다.
- 「처용가」(處容歌): 역신을 쫓는 의식에서 유래된 향가로, 신화와 구비문학적 요소가 강하게 담긴 작품이다. 처용이 아내를 범한 역신에게 관용을 베풀자, 역신이 감화되어 처용의 모습을 그려 문에 붙이면 들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이 이야기는 민간신앙과 불교적 자비 사상이 융합된 상징적 노래로 평가된다.
-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기파랑이라는 이상적 인물을 찬양한 노래로, 그의 덕성과 의로움을 노래한다. 이는 당시 화랑도의 윤리관과 가치관, 즉 충, 효, 신의 같은 유교적 요소와 불교적 이상이 어떻게 통합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이처럼 향가 한 편 한 편은 단순한 ‘노래’를 넘어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 감정, 세계 인식을 드러내는 문학적 거울이자 종교·정치·사회적 문화의 총체라 할 수 있다.
신라 향가문학은 한국 고대 문학의 정수이자 정체성의 뿌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학 장르이다. 향가는 단순한 서정시를 넘어 종교, 정치, 사회를 포괄하는 복합문화적 산물이며, 당시 신라인들의 사상과 감정, 공동체 의식과 종교적 신념이 어떻게 문학으로 표현되었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무엇보다 향가는 우리 고유어로 된 최초의 문학이라는 점에서 국문문학사의 시발점으로서의 위상을 가진다. 향찰이라는 독창적 문자체계를 통해 한국어의 문법과 어휘, 고유한 시적 리듬을 보존했다는 점에서 언어사적 가치도 크다. 동시에, 불교를 중심으로 한 신라 사회의 종교적 세계관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여, 종교문학으로서도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현대의 우리는 향가를 통해 신라의 정신세계를 간접 체험하며, 고대인들의 정서와 삶에 공감할 수 있다. 「제망매가」의 슬픔, 「처용가」의 포용, 「찬기파랑가」의 존경심 등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정서로 현대인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향가는 사라진 과거의 언어이지만, 그 노래의 정서와 의미는 여전히 생생히 살아 있다. 신라의 향가문학은 단절된 옛 노래가 아닌, 오늘날 한국 문학과 정신문화의 근간으로서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고대 문학의 한계를 넘어선 향가의 가치는 앞으로도 더 많은 해석과 연구를 통해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살아 있는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