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누구나 마음속에 한 번쯤은 ‘그때’를 떠올릴 때가 있다.
매일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복도를 오가고, 종이 울리면 자리에 앉고, 쉬는 시간마다 누군가를 몰래 바라보거나 몰려다니며 웃고 떠들던 그 시절.
특별한 일이 있었던 건 아니어도, 이상하게도 그 시간들은 자꾸 떠오르고, 한참 지나고 나서야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시간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소설이다.
특히 국내 소설 중에는 학창시절의 어설픈 감정, 서툰 말투,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과 우정을 섬세하게 담아낸 작품들이 많다.
그 시절의 공기, 냄새, 두근거림, 외로움, 혹은 가끔의 반항과 상처까지.
그런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잊고 있던 나의 어린 모습, 그 시절 친구들, 내가 품었던 작은 꿈 같은 것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이 글에서는 학창시절의 감성을 생생하게 되살려주는 국내 소설 세 권을 소개하려 한다.
단순히 배경이 ‘학교’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이 우리의 기억을 건드리고, 마음 한편을 울리는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맞아, 나도 그랬지' 하고 웃고, 가슴이 조이고, 문득 친구가 보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그럼, 이제 학창시절의 문을 조용히 열어주는 세 권의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본론
1. 『소년이 온다』 – 한강
이 소설은 단순히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고 하기엔 너무 아프고 무겁다.
하지만 『소년이 온다』 속의 ‘소년’은 분명 우리 모두가 한때 가졌던, 작고 맑고 정의로운 마음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1980년 5월 광주. 도시는 무너지고, 학교는 닫히고, 아이들은 거리로 나선다.
주인공 동호는 겨우 열다섯의 중학생이다.
그는 친구의 시신을 찾으러, 자신의 몸을 던져 도청 안으로 들어간다.
처음엔 친구 때문이었고, 나중엔 그냥,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이유도 설명도 필요 없이, 마음이 시켜서 움직인 것이다.
이 소설은 단지 ‘역사’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었던 ‘학생들’의 이야기다.
무엇이 옳은지, 왜 무서운지, 어른들이 말해주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느꼈고, 행동했다.
책을 읽다 보면 동호뿐 아니라, 나도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내가 가졌던 작은 용기, 선한 마음, 말하지 못했던 정의감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소년이 온다』는 슬프고 아프지만, 잊으면 안 되는 이야기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어떤 마음을 다시 꺼내보게 만드는 책이다.
2. 『완득이』 – 김려령
『완득이』는 학창시절의 복잡한 감정과 성장 과정을 아주 솔직하고 유쾌하게 풀어낸 소설이다.
주인공은 고등학생 완득. 집은 가난하고, 엄마는 없다. 아빠는 장애인이고, 학교에서는 늘 문제아로 찍혀 있다.
그런 완득이의 인생에 들어온 단 한 명의 어른, ‘똥주’라는 별명의 괴짜 교사가 그의 인생을 조금씩 흔들기 시작한다.
이 소설이 특별한 건, 완득이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어른 흉내’를 내며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사실 완득이는 나쁜 아이가 아니다. 다만 세상이 그에게 다정하지 않았고, 완득이도 세상을 믿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똥주 선생과의 갈등과 대화를 통해, 완득이는 점점 사람을 이해하고, 자신을 받아들이게 된다.
『완득이』는 웃기고 유쾌하지만, 웃음 뒤에 남는 감정이 아주 진하다.
우리 모두에게도 완득이 같은 순간이 있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상처, 어른들이 모르는 고민, 갑자기 눈물이 나던 날들.
그 시절의 우리를 조용히 안아주는 소설이다.
3.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강승민
이 소설은 다소 덜 알려졌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성장 이야기다.
고등학교 2학년, 평범한 여고생 민서가 주인공이다.
어릴 땐 막연히 ‘나중에 어른이 되면’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지만, 정작 어른이 되어가며 더 많은 고민과 감정을 겪는다.
친구와의 갈등, 첫 연애, 가족과의 거리, 나 자신에 대한 불안까지.
민서는 그런 것들에 서툴게 반응하고, 때로는 도망치고, 어떤 날은 울면서도 글을 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아주 작은 감정들까지 놓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내가 나를 좋아하지 못했던 날들, 친구가 밉지만 잃고 싶지 않았던 순간들, 엄마의 말이 싫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면 다 맞았던 기억들.
그런 감정 하나하나가 너무 익숙해서, 마치 내 얘기를 누군가가 대신 써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은 결국, 누구나 한 번은 겪었을 ‘불완전한 성장’에 대한 이야기다.
그 시절 우리가 얼마나 흔들리며 컸는지를 다정하게 되돌아보게 한다.
결론
학창시절은 단순히 나이가 어릴 때를 뜻하지 않는다.
그 시절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믿고, 사랑도 전부인 줄 알았고, 친구와 싸우다 울고, 사소한 말에 밤새 고민했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고, 서툴고, 때로는 부끄럽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순수하고 진심이었던 시절이기도 하다.
이번에 소개한 세 권의 책은 모두 그런 시절의 감정들을 다시 떠올리게 해준다.
『소년이 온다』는 아프지만 지켜야 했던 것들, 『완득이』는 웃으며 버텼던 현실, 『지금 알고 있는 걸…』은 말하지 못했던 마음들을 담고 있다.
세 권 모두 아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공통점은 있다.
그건 바로, 우리가 ‘그때’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책을 덮고 나면 마음이 조금 서늘하면서도 따뜻하다.
잊고 지냈던 친구의 얼굴이 떠오르고, 그 시절 나에게 지금의 내가 말을 걸고 싶은 마음도 든다.
“괜찮아, 그때 너 참 잘했어.”
그렇게 소설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연결해주는 다리가 되어준다.
그리고 언젠가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의 소설 속 한 장면이 되겠지.
그러니 오늘을 조금 더 다정하게 살아야겠다.
책 속의 소년, 완득이, 민서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