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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칭 시점이 만들어내는 문학적 변화

by 비비국어 2025. 5. 19.

1인칭 시점이 만드는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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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에서 시점은 이야기의 구조와 독자 경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특히 1인칭 시점은 서술자의 정서와 인식을 독자에게 직접 전달함으로써 높은 몰입감을 유도한다. 최근 한국 현대문학에서 1인칭 시점은 단순한 서사 전달 도구를 넘어 다양한 실험과 해석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1인칭 시점의 전통적 역할에서부터 현대문학에서의 변형 및 효과에 이르기까지 그 흐름을 살펴보고, 시점 선택이 문학적 주제와 정서에 어떻게 개입하는지를 고찰해본다.

시점은 단순한 시각이 아니다: 1인칭 시점의 문학적 중요성

문학 작품에서 ‘시점’은 단순히 이야기를 바라보는 각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시점은 곧 이야기의 방향성과 정서, 그리고 독자와 서술자 사이의 관계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다. 그중에서도 1인칭 시점은 서술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나’의 목소리로 풀어냄으로써 독자에게 직접적인 정서적 교감을 유도한다. 이는 독자가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는' 체험을 가능하게 만든다. 전통적으로 1인칭 시점은 개인적 고백, 일기 형식, 혹은 자전적 서사에 주로 활용되어 왔으며, 내면의 심리나 감정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데 유리한 구조였다. 그러나 현대문학에서는 이 시점이 점차 다양한 변주를 거치며, 기존의 정체성과 자아를 의심하고 해체하는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특히 한국 현대문학에서는 전통적 시점의 구조를 전복하거나, 서술자와 화자 사이의 거리감을 이용해 새로운 독서 경험을 창출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서술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문학이 현실을 인식하고 재현하는 방식의 변화를 반영한다. 따라서 1인칭 시점의 변화는 문학 전반의 서사 구조 및 의미 생산 방식의 중요한 단초로 간주될 수 있으며, 이는 문학비평의 영역에서도 활발히 다루어지고 있는 주제다.

 

1인칭 시점의 진화와 그 효과: 한국 현대문학을 중심으로

1인칭 시점은 전통적으로 주인공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나 김승옥의 『무진기행』은 그 대표적인 예다. 이들 작품은 서술자가 자신의 경험을 '고백'하는 방식으로 서사를 끌고 가며, 독자는 마치 주인공의 일기를 엿보는 듯한 몰입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특히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전통적 1인칭 시점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기 시작한다.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는 1인칭 화자가 이야기의 구조적 신뢰성을 의심받으며, 이야기 자체의 허구성과 현실을 교묘히 넘나드는 장치로 작용한다. 서술자는 주인공이자 독자의 입장을 동시에 차지하며, 독자는 이야기 속 '나'가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 혼란스러워진다. 이와 같은 방식은 이야기의 신뢰도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자가 이야기의 층위를 더 깊이 탐색하게 만든다. 또한, 최근 문학에서는 다중 1인칭 시점이 실험적으로 도입되기도 한다. 한 작품 안에서 여러 인물이 각기 다른 ‘나’로 등장하며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서술하는 구조는, 독자에게 각기 다른 인식과 감정을 직면하게 하고 복합적인 정서를 유도한다. 이는 단순히 시점의 실험을 넘어서서, 동일한 사건을 다양한 주체의 시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객관적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드러내는 서사 전략이기도 하다. 이런 변화는 서술자와 독자 간의 경계를 허물고, 이야기와 현실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드러내는 데 기여한다.

 

서술의 방식에서 존재의 방식으로: 시점의 의미를 새롭게 읽다

1인칭 시점의 변화는 단순히 문학적 기법의 진화로 볼 수 없다. 그것은 곧 인간 존재의 방식, 그리고 세계를 인식하는 틀의 변화를 반영한다. 전통적 1인칭 시점이 개인의 내면을 중심으로 서사를 구축했다면, 현대의 1인칭 시점은 그 내면조차 해체하고, 때로는 허구적 존재로 전락시키며 문학적 정체성 자체를 재구성한다. 이는 독자에게 단지 이야기를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 서술 자체를 의심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요구하게 된다. 문학의 본질이 세계와 인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바라보는 일이라면, 시점의 선택은 그 첫 관문이 된다. 특히 1인칭 시점은 그 서술 방식의 직접성과 감정 이입의 강도로 인해 문학이 독자에게 감정적 울림을 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나아가 다층적 서사 구조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절대적 주체가 아니며, 복수의 해석 가능성과 불확실성을 내포한 존재로 자리잡는다. 이처럼 변화된 1인칭 시점은 독자에게 단순한 이야기 전달을 넘어 문학적 사유와 반성의 계기를 제공한다. 한국 현대문학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다양한 작가적 실험과 철학적 고민을 담아내며, 새로운 이야기 구조와 정서적 깊이를 확보하고 있다. 결국, 시점은 단지 이야기의 문을 여는 열쇠가 아니라, 문학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창이 된다. 이 창을 통해 우리는 ‘나’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때로는 ‘타인’을 이해하려는 성찰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